만남.


 중학교 시절.


 카논 : 반묶음 머리

 아야모 : 날개뼈를 덮는 긴 머리


 교복 : 푸른색 세라복




 입시시험을 치루고 명문 사립 여중에 초등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입학하게 된 아야모는 입학식 전 날 잠을 설쳐 늦잠을 자게되었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지각은 면했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자리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게 바로 카논의 옆자리.


 이국적으로 생긴 그녀의 외모에 다가가기 힘들어 자연스레 비어있던 옆자리였지만, 아야모는 오히려 그녀의 외모에 흥미가 생겼다. 옆자리에 앉아 똑바로 앞만을 보고 있는 그녀를 흘깃거리며 바라보다, "저기, 안녕?" 잠깐의 고민과 침묵 끝에 아야모는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말은 더듬더듬, 조금 어눌한 일본어.


 외국인인가, 조금 귀엽다고 생각하며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지만 중간중간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섞어 사용하는 영어 발음이 너무 좋아 알아듣지 못 하고 멍해져버렸다. 조금 당황해보이는 카논에게 괜찮다고 뭐라고 했는지 다시 물으려고 하는 차에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그를 따라간 강당에서 입학식을 치르고 다시 돌아온 교실에서는 번호순으로 자리가 재배열되었고 둘은 자리가 조금 멀어졌다. 그리고 순서대로 시작된 자기소개. 이소노 카논. 이 행의 그녀는 순서가 꽤 빨랐다. 외국에서 살다왔다는 얘기에 정말 외국인인가, 싶어 바라보았지만 그녀가 매체에서 보아왔던 서양인들과는 달리 일본인의 느낌도 많이 나서 혼혈이구나, 지레짐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명의 사람들이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 외우는데는 자신이 없어서 거의 흘려듣고 있었다. - 곧 아야모의 차례가 되었다.


 조금 긴장하여 얼어붙은 얼굴로 무난하게 앞 사람과 같이 이름과 출신 초등학교 등을 말하고 어릴 때부터 호신용으로 가라데를 배우고 있다고, 가라데 부에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혹시 이 반에서 같이 들어갈 아이가 있을까 싶어 얘기하며 교실 전체를 빠르게 살짝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뭔가 반응을 보이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이런 학교에 가라데 부가 있는게 신기하지. 이런 학교, 말하자면 아가씨 학교의 가라데 부는 그녀를 이 학교에 지원하게 만들었지만 - 교복도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 동시에 조금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금 실망하며 자리에 앉아 머리카락으로 살짝 열이 오른 얼굴을 가렸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몇몇 아이들이 카논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저 아이랑 친구되기는 글렀나.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 하는 아야모는 작게 한숨지었다. 저렇게 이쁜 아이가 나랑 친구가 될 리가 없지. 딱히 다가갈 생각도 하지않을 뿐더러 다가오는 아이도 없어서 이러다 친구 못 사귀는거 아닌가, 우울한 생각에 책상 위로 길게 늘어졌다. 사실 취미가 대부분 독서나 다도, 수예같은 것들인 얌전한 그녀의 클래스메이트들은 그녀의 굳은 얼굴과 가라데 취미에 겁을 먹어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었다.


 수업이 마치자마자 빠르게 가라데 부에 입부신청서를 제출한 아야모는 간단한 입부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하고 기분 좋게 가방을 챙기러 교실로 돌아갔다. 좋은 선배들이 많은 것 같아. 신나게 열어제친 문 너머로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교실에 홀로 앉아 창 밖을 내다보는 카논이 있었다.


 그녀는 문 여는 소리에 자신을 잠깐 돌아보는 듯 하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쩐지 민망해져서 급히 가방을 챙기고 일어서는데 왠지 그녀가 조금 쓸쓸해보였다. 조금 찬스라고 여긴 아야모는 잠시 우물쭈물 망설이다 결국 말을 걸었다.


 "저기, 집에 안 가?" 용기를 내어 내뱉은 한 마디에 그녀가 다시 뒤돌아보며 눈을 마주쳐왔다. 파란 눈동자가 참 예쁘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아버지를 기다린다는 말에 용기내어 말 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기다려주겠다고 얘기하며 그녀의 곁에 앉았다.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살짝 웃자 카논이 마주 웃어주었다. 그에 긴장감이 풀리고 그녀를 배려해 조금 천천히 말하며 여러 시답잖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아버지가 도착했고, 자전거를 타고 온 아야모는 태워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한 편으로는 얘깃거리가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일은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도 카논의 아버지는 종종 늦었고 방과 후 교실에서의 둘만의 시간은 점점 쌓여갔다. 그러다 개학 후 두번째 맞는 금요일 오후 하교시간. 예기치 못 했던 소나기가 시원하게 퍼부었다. 예보에 비 소식은 없었는데... 작게 투덜거린 아야모는 내일 학교도 안 오겠다, 그냥 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교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자전거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꺼내 타고 가는 중에 그런 그녀를 교문에서 막 자동차에 타려던 카논이 발견하고 불러세웠다. 몇 번의 입씨름 끝에 아야모는 항복했고, 자전거를 주차장에 다시 매어놓고 축축히 젖은 채로 카논의 아버지 자동차에 올라탔다. 어색하게 그녀의 집에 도착해서 샤워하고 그녀의 옷을 빌려입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애당초 약속은 비가 그칠 때까지만 있다가 돌아가는 거였지만 그러지 못 하게 되자 카논의 집에 하룻밤 신세지는 것으로 예정을 바꿨다. 그렇게 하룻밤동안 같이 있게 된 둘은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더 친해졌다. 메일주소와 라인 아이디도 교환.


 그 다음 날 이른 아침, 운동하는 카논을 따라 같이 달리며 학교에 가서 자전거를 확인했지만 물기가 덜 말라 자전거를 끌고 카논 집으로 돌아갔다. 자전거를 닦고 마르기를 기다리며 아침밥도 먹고 양치하고, 그제야 나잇대에 어울리게 웃으며,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그날부터 둘은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