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보디가드 AU
현대 문물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시대의 일본.
[재력 있는 집안의 고명딸 아야모. 오랜 세월 연을 이어온 보디가드 회사가 카라스노(원래는 무가로, 강한 검객들을 배출하는 이름있는 곳이었다. 몇몇 검객이 니시하라 가에 호위무사로 취직하고부터 줄곧 연을 이어오고 있으며, 카라스노 회사가 창립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니시하라 가의 도움이 컸다).]
[니시하라 가는 막부를 도와 여러 가지 일을 해서 여기저기에 테러를 계획하는 양이지사나 끌어내리고자 하는 정적이 많다. 그래서 니시히라 가의 직계들은 한 사람 당 한 명씩 전담 보디가드가 어릴 적부터 붙어있다. 아야모는 가문의 사랑을 받는 늦게 낳은 고명딸이라 태어날 때부터 카라스노 중 가장 베테랑을 붙여놓았는데, 그는 그녀가 21살이 되던 해에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은퇴하였다. 그러자 카라스노에서 가장 급이 높은 보디가드를 붙여줬는데, 그게 바로 마침 성인이 되서 임무를 나갈 수 있게 된 20살의 유우. 니시하라 가의 보디가드들 중 가장 어리지만 보디가딩에 있어서 그의 실력을 따라잡을 이가 없다.]
[평소엔 아이마냥 아야모가 하는 모든 일을 신기해하고 (가문의 일)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그 누구보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그녀를 지켜낸다. 그렇게 1여 년을 같이 지내면서 몇 번의 위험을 거치고 아야모는 유우의 진짜 모습이 뭔지, 그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이 커지고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바보 같아 보이지만 유우도 한 사람의 프로. 은근한 벽을 세우는 그 앞에서 번번이 좌절만 하는 아야모. 결국, 아가씨의 눈물 나는 제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가 실시.]
[유우는 밝고 태양 같아서 아무에게나 열려있는 것 같지만, 은근히 제 사람과 아닌 사람을 나누는 게 있다. 다른 사람들 마음의 문은 활짝 활짝 열어버리면서 자기는 안 열어주는 게 악질인 부분. 열려있구나~ 하면서 들어갔다가 만나게 되는 벽에 더 크게 충격받아버리는....]
[아야모의 위로는 오빠 3명. 카라스노 3학년들이 다이치, 스가, 아사히 순서로 붙어있음. 1학년들 애들은 아직 회사에서 훈련받는 삐약이들... 유우가 저 이래 봬도 후배도 있슴다! 하면서 애들 사진 보여주고 귀엽다면서 얘기도 나누면 좋겠다.]
[유우는 도망치려하는 아사히를 몰아붙였던 것처럼 아야모에게도 그런 식으로 한 적이 있을 듯. 꽤 큰 함정에 걸려버려서 궁지에 몰렸을 때.
비어있는 창고 같은 방으로 도망쳐 문을 닫았다. 잠깐은 시간을 벌어주리라. 하지만, 도망칠 길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평소와는 달리 그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흘긋 눈을 내리니, 옆구리를 강하게 틀어쥐고 있는 하얀 손가락 사이로 붉은 핏줄기가 흘렀다.
"유우. 그들은 날 원해. 너는 강하니까, 나까지는 무리더라도 네 한 몸 지키는 건 잘할 수 있지?"
"...? 지금 무슨 소릴 하십니까."
"그러니까, 내가 나가서 항복하면서 주의를 끌 테니까, 그사이에 도망치라는 얘기야."
당황스러워 보이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불규칙하게 주변을 울리던 그의 숨소리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그의 눈을 마주하기 힘들어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넌 지금 상처를 입었어. 퇴로가 보이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까지 고집 피우지 마! 때론 포기하는 것도...!"
"저는!!"
갑작스레 난 소리에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더니 본 적 없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싸늘하게 분노하고 있는 검은 짐승.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숨이 턱 막혀왔다. 정면으로 맞춰오는 그의 눈빛을 피할 수가 없었다. 아까 그가 낸 큰 소리에 적들이 위치를 파악하고 다가오는 발소리가, 이곳과는 동떨어진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저는, 당신을 지킵니다."
한참을 입을 꾹 다물고 바라보던 그가 돌연 부드러이 미소를 지으며 내뱉는 말에 헉, 하고 현실로 돌아왔다. 뚜벅뚜벅 다가온 그가 내민 피로 얼룩진 손을 붙잡아 일어섰다.
"아시죠? 남은 길은 정면돌파뿐입니다."
"...알아."
그는, 최악의 상황에도 나만은 살아남을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너를 살리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하나에 바로 뛰세요. 눈 꼭 감고 내가 당기는 방향으로 계속 뛰면 됩니다."
제발 지원이 와 있기를. 그의 부재를, 나의 부재를 눈치채기를.
"셋... 둘..."
문밖으로 웅성거리는 적들의 소리가 들렸다.
제발, 제발. 그가 살아남기를.
"하나!"
그의 목소리와 끌어당기는 소리에 맞춰 눈을 꼭 감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
살아남았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액체가 흩뿌려지고 쇳덩어리들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고함과 비명으로 가득 찬 공간을 빠져나와 살아남았다. 마침 운 좋게 바깥에서부터 카라스노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어서 상처를 입은 데다 나라는 짐까지 붙은 이쪽에는 많은 인원이 배정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정말 운이 좋아서. 그 격전지를 뚫고, 그와 나는, 살아남았다.
큰 상처를 입은 그는 카라스노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라졌고 나는 나의 납치 소식에 달려온 오빠들에게 둘러싸여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뵌 부모님은 나를 정말 많이 걱정하시고 계셨다. 급기야 보디가드를 바꾸자는 말까지 나왔고 황급히 그의 대단함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하고 그가 아니었으면 무사하지 못했을 것임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부모님은 생각을 바꾸셨다.
그 후, 오랜만에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저녁 식사를 했지만 나는 그가 걱정되어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입맛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물러 나왔다. 식당을 나온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져서 그의 방에 도착했을 때는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멈추고 나서야 그것을 깨달은 나는 급하게 숨을 가다듬고 문을 두드렸다. 마지막으로 본 그의 모습은 적의 피를 뒤집어써서 더러워지고 생채기만 난 나와 달리, 그 까만 정장이 빨갛게 보일 정도로 많은 피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그것이 적의 피인지 본인의 피인지 구별하는 것조차 어려워서, 문을 두드리는 내 손은 잘게 떨고 있었다. 솔직히, 그가 죽었다고 해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안에서는 들어오라는 평소와 같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나야."
"아, 아가씨! 들어오세요."
조심스레 들어가자 보이는 건 온몸에 붕대를 감다시피 한 유우가 힘겹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장면이었다. 깜짝 놀라 달려가서 다시 눕히려 했지만 괜찮다는 듯 짓는 미소에 내뻗은 손은 머쓱하게 다시 내려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은 그가 크게 숨을 내쉬며 물었다. 평소엔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도 부족하다는 듯이 활기 넘치던 사람이었는데. 괜히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무슨 일이에요?"
"..."
"내가 걱정돼서 왔어요?"
말없이 푹 숙인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솔직히 내 잘못으로 그리된 것이니 싸대기 한 대 정도는 맞을 거로 생각했는데. 가만히 쓰다듬을 받았더니 왠지 괜찮아진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는 평소와 같이 시원하게 씨익 웃어주었다.
"나 특급요원인 거 이제 믿겠어요? 나 아니면 아무도 그렇게 못 함다! 아, 아가씨는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죠??"
이후로도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그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그의 몸 여기저기에 감긴 붕대들을 살폈다. 윗옷을 걸치고 있지 않지만, 피부는 전혀 보이지 않게 온몸을 감은 붕대에 그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것 같았다.
"많이, 다쳤구나..."
"아, 이거 별거 아님다! 이 정도면 1주일도 안 돼서 낫는다구요!! 의사들은 맨날 절대 안정이니 뭐니, 한 달이나 방 안에 처박혀 있으면 없던 병도..."
"...나는 네가 죽는 줄 알았어."
"...아가씨?"
내가 본 빨갛던 피는, 하얗게 질린 그 얼굴은, 꼭 맞잡은 손 사이에서 식어가던 피는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지고 너무나도 꿈 같았지만 꿈이 아니었다. 그는 나로 인해 다쳤었고, 나로 인해 죽을 뻔했다. 눈물샘이 고장 난 것 같이 눈물이 멈추질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 내 눈물에 당황한 그는 급히 머리에서 손을 떼고 안절부절못했다.
"왜, 왜 그렇게까지...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그게 제 일인걸요."
난처한 듯이 눈꼬리를 늘어트리고 웃는 모습에 울음이 뚝 그쳐버렸다. 그와 나 사이에 두꺼운, 너무나 두껍고 단단한 벽이 느껴졌다.
아, 이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 나만의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이런 벽 따위, 산산이, 조각조차 남기지 않고 부숴버리고.
그렇게 나는 결심했다.]
[사실 유우는 아야모를 보자 한눈에 반했다. 그래서 일부러 관심을 표하고, 더 귀찮게 하고. 그런데 아야모는 다정하게 그런 그를 받아주니까 비겁하다고 자신을 자조하면서도 그 다정함에 기대었다. 그러므로 그는 아야모에게 더욱더 두꺼운 벽을 세웠다. 그녀는 보호대상일 뿐이다. 그녀는 나를 보디가드로밖에 보질 않아. 그녀를 곤란하게 하지 마. 끝없는 자기 최면도 걸면서. 필요 이상의 스킨쉽도 절대 하지 않으면서. 그런데 위의 사건 이후에 아야모가 애정 공세를 퍼붓자 엄청 당황했다. 순식간에 바뀌어 버리니까 적응도 되질 않고, 자기 최면 건 것도 있고.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야모를 피하긴 해야 하는데 곁에는 있어야 하니 딱 죽을 맛. 인생 최대의 혼란에 빠져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은 견디다 못해 타나카와 엔노시타를 대타로 세우고 꾀병으로 병가를 낸다. 아야모는 바빠서 오진 못 하고 들이닥치는 병문안 선물에 마른 한숨만. 아야모의 의도는 그저 제 사람 만들기일 뿐이라고, 내 환심을 사기 위한 작전일 뿐이라고, 넘어가면 안 된다고 혼란스러운 자기감정을 추스르고 있는데 타나카와 엔노시타가 크게 다치고 아야모가 또다시 납치당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겨우 이런 거로 떨어져 있어서 그녀를 위험하게 했다는 자책에 휩싸인 유우. 급하게 달려나가 카라스노 회사와 합류해서 아야모를 찾아냈다. 무사한 모습에 안도가 되면서도 그런 일이 있었으면서 또 일한답시고 무방비하게 돌아다닌 그녀에게 화가 치밀어 올라서 큰소리를 내려 했지만, 그랬지만. 잔뜩 겁먹은 아야모가 유우를 보고 안도해서 와락 껴안아버렸다. 품에서 잘게 떠는 그녀에게 차마 화를 낼 수는 없어서 토닥이기만 했다.
거기서 그는 깨달았다. 아, 나는 이 사람한테서 절대 못 벗어나겠구나. 그냥 내 감정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아가씨. 저는 당신을 연모합니다."
"...뭐...??"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너무 뜬끔없는 말에 놀라서 몸의 떨림도 멈추고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기만 하는 아야모의 모습에 그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는 멋있다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그녀가 귀여워 보였다.
"진정했어요? 그럼 우리 일단 밖에 나가서 얘기할까요?"
인정하면 이리도 마음 편한 것을. 그는 가벼운 맘으로 가볍게 그녀를 안아 들고 밖으로, 빛으로 향해 걸어나갔다.]
[기모노 입은 아야모와 검과 총을 사용하는 양복 입은 유우. 적은 정부의 개화에 불만을 품은 양이지사들이 보고 싶었다.]
[어릴 땐 긴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 올리고 다녔는데 중학교 시절에 있던 납치 시도에 휘말려 틀어 올린 머리가 채로 잘려나가고 그 이후부터는 짧은 머리 고수. 유우와 연애할 즈음부터 다시 기르기 시작하고 결혼할 때는 다시 긴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