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 in Love
그 날은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평소와 똑같은 6월의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적당히 팀을 나누어 3 대 3 연습게임 도중, 플라잉 리시브를 하다 균형을 잃고 크게 굴렀다. 왼쪽 손목이 찌릿하고 아픈 것이 살짝 삔 것 같았다. 잘 흘러가는 연습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털고 일어나 연습 재개를 요청했지만, 아무리 멀쩡한 척을 해도 선배들의 눈썰미를 피할 순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 니시하라상과 함께 구급상자가 있는 부실로 오게 되었다.
“구급상자 찾아올게, 잠시만 여기 앉아있어.”
간이 의자에 나를 앉혀놓고 그는 구급상자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부활동이 끝나고 나서는 마무리하며 정리를 잘해놓지만, 시작 전에는 급하게 이런저런 물건을 던져놓고 나가는지라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의 등을 시선으로 쫓다 문득 이 상황을 다시금 생각했다.
동경하는 그 니시하라상과 같은 공간에, 그것도 둘만 있는데! 그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니고 볼썽사납게 굴러 다친 손목 때문이라니!!
조금 울고 싶은 기분에 축 처져 있자니 구급상자를 찾아온 니시하라상이 내 얼굴을 보고 갸웃거리며 내 앞에 한쪽 무릎만 굽히고 앉아 왼팔을 부드럽게 당겨 가져갔다.
“많이 아파? 그렇게 아프면서 계속 연습하려 했단 말이야?”
“아, 아니, 그런 거 아님다! 전 정말 괜찮아요! 이 정도는 별거 아닌걸요.”
“아니, 그렇게 말해봤자…, 니시노야군 엄청 와장창 크게 굴렀다고.”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가 금방 후회했다. 흐음, 낮은 소리를 내며 손목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이 느껴지는데, 보고 있지 않으니 더 신경이 쓰인다고나 할까. 잠깐 보인 걱정스러운 얼굴에 더 민망해졌다.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지 못하고 부실 여기저기를 떠다녔다.
“주, 중학교 때는 그것보다 더 크게 구른 적도 많았지만 다 나았는걸요!! 전 튼튼함다!”
“…그보다 크게 구르려면 대체 어떻게 굴러야 되는 거야? 그보다 넌 선수라고. 몸 관리는 잘해야지.”
“…넵.”
결국 혼나고 말았다. 얌전해진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작게 웃은 그가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라며 파스를 뿌리고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그는 붕대에 집중한 건지 아무런 말이 없었고 덩달아 나도 조용해진 우리 사이에는 사락사락 붕대 감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바라본 창밖의 하늘은 조금씩 붉게 물들어갔다. 조금 있으면 부활동이 끝날 시간이다. 제대로 연습하지 못한 것을 아까워해야 할지, 반대로 덕분에 니시하라상과 함께 있을 수 있었다고 좋아해야 할지 조금 헷갈리다 문득 고개를 숙여 그를 바라봤다.
진지한 얼굴로 붕대를 감는 손길이 혹시나 내가 아플까, 매우 세심했지만 아주 능숙했다.
그러고 보니 니시하라상은 중학교 때까지 가라데부에 있었다고 했나. 지금도 종종 도장에 나가는 모양이고. 이런 부상은 익숙한 걸까. …많이 다쳤던 걸까?
집중하며 숙인 고개에 스륵, 그의 짧은 주황빛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훤히 드러난 하얀 목선이 부드럽게 등으로 이어진다.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괜히 머쓱해져서 오른손을 들어 목덜미를 쓸었다.
붕대가 다 감기고 마무리 매듭을 짓는 것 같아 그쪽을 다시 바라보다 내리깐 길고 까만 속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까지 가깝게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고 있자니,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슬쩍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왔다.
순간 그늘에 있던 갈색의 눈동자가, 밝은 노을빛을 받아 금색으로 반짝였다. 날카로운 눈매에 어울리지 않게 동그랗게 뜨인 눈은 금세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살포시 휘어졌다.
“이제 괜찮지?”
그때였다. 세상이 온통 노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순간은.